싱글벙글 친절농협 남지농협
웃개둑의 처녀 무덤 소개
남지 철교가 가로지른 낙동강 강변에 아무도 벌초 안해 잡초만 무성한 네모진 무덤이 있다. 매년홍수에 곧잘 물에 잠기면서 , 사람들은 이 무덤을 처녀 무덤이라 부른다. 백여 년 전, 이곳 웃개둑(南旨의 속명)에는 金 參奉이란 악사가 살았다. 그러나 벼슬하기 전 청년 시절은 가난하여 스스로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해야 했던 외동아들이기도 했다 특히 김참봉네는 자손이 귀하기도 하여 산소를 제비설에 써서 많은 자손을 보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아이가 나면 죽거나 하여 몇대로 외동이었다.
어느 해 큰 장마끝에 홍수가 났다. 김참봉이 애서 가꾼 농사도 물곳에 잠겨 들었다. 홍수는 사흘은 물이 붓고 사흘은 물이 빠지는데 그가 물 빠질 사흘이 될 때쯤 웃개둑(지금 남지철교 근처) 밭에 나갔다. 심어놓은 농작물은 하나도 쓸모없이 되어 낙심하여 밭을 돌아다니는데 아직 덜 빠진 물가에 뭔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여자 시체로 물에 불어 큰 황소같이 된 큰덩치가 떠 물가로 밀려와 있는것이 아닌가? 강상류 어디선가 익사해서 떠내려 온듯했다. 삽으로 밀어내 강물에 띄워 버릴까 하다가 김참봉은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하고 바로 그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었다. 그날밤 꿈에 죽은 여자가 나타났다. 큰 절을 올리더니, "고맙습니다. 서방님, 은혜는 보답하겠습니다. 내년부터 고추를 심으면 고추농사는 잘 될것입니다." 하고 사례하면서 사라졌다. 김참봉은 이듬해 시험삼아 고추를 심었다. 그러나 현몽 그대로 고추농사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참봉은 그 꿈을 개꿈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자손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김참봉은 아들 둘에 딸하나로 몇 대 외동을 면했고 그가 죽기전에 두 아들에게서 손자 열댓 명을 봤으며, 그후손들도 아들 못낳아서 걱정하는 집이 없었으니, 처녀의 보은인(고추농사가 잘 되리라)는 것은 그대로 되어진 것이라 한다. (1979년 남지읍 상남동 金應龍 남 6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