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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고개와 도둑바위 소개
이조 숙종 때 수다리 산중에 팔형제의 도둑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주 활도 무대는 부곡에서 수다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행인이 지나면 즉시 달려가 금품을 약탈하는등 이 고개와 근처 진교(지이다리)등지에 출몰하여 수 많은 행패를 부렸다. 영산 현감이 보고하여 나라에서도 수 차례 포졸을 풀어 소탕하려 하였지만 번번히 실패하여 고심하던 중 지금의 온정리에 살고 있던 이시추 장군이 도둑을 잡기로 작정하였다. 몇 차례 정탐한 결과 도둑들은 수다리 산중의 커다란 바위굴을 그들의 소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냈다. 계교를 써서 도둑의 무리를 소탕하였다 하는데 일설에는 바위로 그 굴을 막아 굶겨 죽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8명의 도둑 중 1명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밀양 무안으로 도둑질하러 나가 굴에 들어 있지 않아 살아났다. 이장군은 자면 사흘을 자고 깨어 있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잠자지 않았다 한다. 남은 도둑은 이장군이 잠들기를 기다려 쳐들어 왓다. 도둑을 다 소탕했다고 믿고 이장군이 잠든 하루째였으므로 부인 김씨가 아무리 장군을 흔들어 깨우며 "도둑이 왔오! 도둑이 왔어요.!" 하고 외쳐도 잠을 깨지 않았다. 도둑은 안방까지 들어와 칼을 내리쳤다. 이장군의 부인이 장군의 등 뒤에 있었으나, 칼은 부인의 왼팔을 잘랐다. 다시 도둑이 칼을 내리쳤다. 오른팔이 달아났다. 그래도 장군은 깨어나지 않았고 이장군은 도둑의 칼에 죽었다. 그러자 부인 의성 김씨도 따라서 순절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팔형제 도둑들의 활동무대였던 고개를 팔도고개, 도둑들의 소굴이었던 바위를 도둑 바위라 일컫는다. 요즘도 도둑바위에서 배꼽처럼 뛰어나온 표가 있는데 이것이 이장군이 이 굴을 막았던 바위라 이야기 되고 있으며, 그 배꼽처럼 튀어나온 바위를 만지면 천둥벼락이 친다는 말도 전해온다. 이시추의 처 의성 김씨의 00가 부곡리에 있다. (당시 영산현감 권두경이 도둑의 잔당을 소탕하고 이 일을 조정에 보고하여 000을 세웠는데 1667년 일로 도둑을 토벌한 공으로 이시추는 순장군 용양위 부사직(후에 부호군)을 夫人의 정열에 貞夫人의 계자를 증하였다.(열녀편 참 조) (1979면 부곡면 수다리 윤유식 남 59세)